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 저자 강연회를 다녀왔다.

강연회에서 작가님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 과정, 쓰고 난 후의 이야기, 책 내용 중 중심이 되는 이야기 몇 가지들을 해주셨다.

이 책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셨다는 작가님. 그 이유인즉슨 더 이상 정치적인 것은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하지만 정식 역사서가 아닌 본인이 겪은 일들로 이야기를 쓰라는 주변의 말에 결국 이 책을 쓰기로 하셨다고 한다. 이 책을 쓰도록 권유받았던 때는 2012년 대선이 끝난 직후였다고 하는데 내가 기억하기에 그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충격을 받고 역사서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던 때였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나의 선택이 옳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선택이 부정된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은 이 책을 너무 부정적으로 쓰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곧 국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국가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이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은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이 작가님의 생각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책에도 잘 드러나 있다. 진보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마냥 비난하지만은 않는다. 어떤 점은 잘했고 어떤 점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부분은 진보는 모든 역사적 사건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는 나의 편견을 깨주었다.

기억에 남는 것이 박정희 정권 때의 이야기이다. 아직까지도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많이 갈리는 만큼 그 부분에 대해선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는 독재자다. 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견을 표시하지 않지만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산업화를 이루었으니 독재가 정당화될 수 있다, 독재를 하지 않았으면 산업화를 할 수 없었다 라는 것이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독재와 산업화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그 의견이 맞다는 데는 동조할 수 없다는 것이 작가님의 생각이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가 생겨날 수 있었다 라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작가님은 이 말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민주주의를 외치고 싸우기 위해서는 중산층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는데 배가 불러야 운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박정희 정권 때 이루었던 산업화로 중산층이 생겨날 수 있었고 이들이 훗날 넥타이 부대로 출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보정권 땐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고 보수정권 때 경제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말도 하셨다. 이는 책에도 나와 있는 그래프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데 년도 별 GDP를 봤을 때 GDP가 떨어졌던 시기는 모두 보수정권 때였고 진보정권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크게 기억에 남았던 한마디가 현 정권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것은 국민이고 지금의 위기는 국민 수준이 낮아서 라고 말한 것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대선이 치러진 직후엔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국민수준이라니 나는 그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기분이 나빴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내가 그 51퍼센트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나는 바른 결정을 했는데 억울하다 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왕인 시대에 똑똑하고 정의로운 왕이 될 수 있게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가 발전하고 그 발전이 주변까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님은 이 책이 20대와 50대에게 많이 읽히기를 바라셨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는 않다고 하셨다. 20대가 이 책을 읽고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길 바랐고 그 이해가 곧 50대들에게 전해지길 바랐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을 읽는 50대는 자신이 겪었던 그 50년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길 바랐다고 한다. 이 바람이 잘 이루어졌는지 아닌지는 책이 나온 지 한 달반밖에 되지 않은 지금 평가할 문제는 아니지만 작가님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도로 책을 읽고 전달한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작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역사를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역사서는 원래 사실에 입각하여 저자의 견해를 배제한 채 써져야 한다고 하지만, 이 책은 저자의 삶의 흐름에 따라 쓰인 만큼 개인이 바라본 역사적 사건이 어떠한 지 개인적인 견해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그냥 역사적 사실 만 공부할 때와는 또 다른 인간적 이해가 가능할 수 있었다. 한 사건에 대한 역사적 견해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저자의 견해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한 논거를 제시하면서 일련의 사건들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큰 사건의 줄기대로 바라보면서 관망하는 것도 역사를 공부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어느 정도 역사의 흐름을 공부한 뒤라면 이 책을 읽고 역사적 사건들 사이에 있는 인간적인 평가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 사건을 한 줄로 명확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 사건에 개입되어 있는 많은 인물들 때문이고, 그러한 인물들을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도 인간을 한 가지 색깔로만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가 계속되는 대립을 하는 것도 말하자면 어떤 정의를 내릴 때 서로 의견을 합치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라서 나쁘고, 보수라서 나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진보의 이런 점은 잘못되었고 이런 점은 잘했다 또는 보수의 어떤 점은 너무 하지만 어떤 점은 잘했다 하듯이 올바른 평가를 내리는 것, 잘한 부분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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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면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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