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13. 5. 17. 19:06

오늘은 석가탄신일, 부처님오신날이다.

감기 기운에 늦게까지 이불 위에서 늘어지게 있다가 그래도 이렇게 휴일을 보낼 순 없지 싶어서 밖으로 나섰다. 처음에는 절로 갈 생각은 없었는데, 아니 마음속으론 가볼까 하면서도 혼자서 이런 날에 절에 가본 적이 없어서 망설였는데 그냥 발 길가는 대로 가다 보니 집 앞에 있는 절로 다다르게 되었다. 

절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 절을 향해가는 내 모습이 뭔가 어색했다. 절에 도착해서 둘러보는데 비빔밥을 먹기 위해 서 있는 줄은 너무 길었고, 절에 대해선 도통 뭘 아는 게 없으니 한참을 서성거리다 그냥 돌아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절에 갔다 왔다 싶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들었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주말엔 학교에 가듯이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녔었다. 그러다 사춘기라고 해야 하나, 다들 사춘기를 겪는 그 정도 나이대에 신앙심을 잃고(신앙심이 아주 와장창 깨지고 뿌리째 뽑혀 나가는 그런 사건이 있었다.) 그 후론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드문드문 친구를 따라 이 교회 저 교회 가보긴 했지만 그다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성인이 되고는 남들이 종교를 물으면 무교라 답했고, 때때로 친한 이들에겐 무신론자라고 하기도 했다.

뭐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릴 적 신앙심이 깊을 때(솔직히 너무 어릴 때라 그걸 신앙심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시절)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갔던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셨다. 어린 맘에 그랬는지 평소 할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종교탄압에 대한 반항심이었는지 절로 들어가는 순간 향냄새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싫었다. 향냄새에 코를 틀어막고 비빔밥을 먹으라는 할머니의 권유에 고개를 내저었다. 절 음식은 절대 먹지않겠다는 나름의 의지랄까. 할머니는 비빔밥을 먹지않겠다는 내게 물이라도 마시라며 절 물은 몸에 좋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더욱 거부감을 느끼고 물 한 모금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그땐, 그랬다. 정말 신기하게도 지금은 아무렇지가 않다. 절에 가는 것도 향냄새를 맡는 것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땐 어른들의 이분법적 사고에 내가 길들어 교회를 다니면 절을 멀리하고 절을 다니면 교회를 멀리하는 그런 행위에 익숙해져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교회를 가도 절을 가도 싫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그런 분위기 속에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낀다. 내가 변한 것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오늘 절에 가면서 든 생각은 남들이 하는 것, 남들이 가는 곳을 따라 하고 따라가는 것이 나쁠 것 없다는 것? 석가탄신일에 절을 가는 것은 성탄절 날 교회에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좋은 거니까 남들 따라다니고 남들 따라 하고,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은 그 나름대로 자신의 종교를 섬기고, 아닌 사람들은 그냥 살면서 이 종교는 이렇구나 다른 종교는 저렇구나 알아가면 될 뿐. 이쪽이 더 좋고 저쪽은 더 나쁘고 이런 식으로 서로의 종교를 깎아내리고 배척할 필요는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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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면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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