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전환

일상 2015. 8. 26. 01:25

관계가 전환되는 순간이 온다.

오랜시간 함께하던 친구가 멀어지는 순간이 온다. 관계가 변하기 때문이다. 관계의 변화는 어디서 오는가. 관계에 놓여진 사람의 변화에서 올 수도 있고, 주변상황의 변화에서 올 수도 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상황이 먼저이든 사람이 먼저이든 무언가가 변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상황은 언제나 변하고 사람도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막고 싶을 때가 있다. 회피하고 외면하면서 그 멀어짐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온다.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그럴싸하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상대방의 눈을 보고 싶지 않아질 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상대방이 무너지지 않는 벽처럼 느껴질 때 시한은 얼마 남지 않게 된다. 이겨낼 수가 없다.

그렇게 하나의 관계가 끝나면 다음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거나 찾아온다. 내가 찾아간 건지 누군가가 찾아온 건지 선후는 알기가 어렵다. 어떤 관계가 끝남과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 맞물릴 때 관계의 끝남이 그렇게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다.

하지만 후폭풍이 분명히 온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시선에 그 폭풍은 난데없이 찾아온다. 인생은 무엇인가 회의가 든다. 함께 했던 시간이 길면 길수록 힘이 든다.

현재에 대한 만족이 과거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뛰어넘을 때 다시 살 것 같고 관계는 계속된다. 그런 관계의 전환은 나이대가 올라갈 때 소속이 바뀔 때 주로 찾아온다.

슬프지만 오래 그러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슬프게도 내가 성장을 했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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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 저자 강연회를 다녀왔다.

강연회에서 작가님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 과정, 쓰고 난 후의 이야기, 책 내용 중 중심이 되는 이야기 몇 가지들을 해주셨다.

이 책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셨다는 작가님. 그 이유인즉슨 더 이상 정치적인 것은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하지만 정식 역사서가 아닌 본인이 겪은 일들로 이야기를 쓰라는 주변의 말에 결국 이 책을 쓰기로 하셨다고 한다. 이 책을 쓰도록 권유받았던 때는 2012년 대선이 끝난 직후였다고 하는데 내가 기억하기에 그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충격을 받고 역사서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던 때였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나의 선택이 옳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선택이 부정된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은 이 책을 너무 부정적으로 쓰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곧 국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국가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이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은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이 작가님의 생각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책에도 잘 드러나 있다. 진보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마냥 비난하지만은 않는다. 어떤 점은 잘했고 어떤 점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부분은 진보는 모든 역사적 사건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는 나의 편견을 깨주었다.

기억에 남는 것이 박정희 정권 때의 이야기이다. 아직까지도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많이 갈리는 만큼 그 부분에 대해선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는 독재자다. 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견을 표시하지 않지만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산업화를 이루었으니 독재가 정당화될 수 있다, 독재를 하지 않았으면 산업화를 할 수 없었다 라는 것이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독재와 산업화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그 의견이 맞다는 데는 동조할 수 없다는 것이 작가님의 생각이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가 생겨날 수 있었다 라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작가님은 이 말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민주주의를 외치고 싸우기 위해서는 중산층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는데 배가 불러야 운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박정희 정권 때 이루었던 산업화로 중산층이 생겨날 수 있었고 이들이 훗날 넥타이 부대로 출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보정권 땐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고 보수정권 때 경제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말도 하셨다. 이는 책에도 나와 있는 그래프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데 년도 별 GDP를 봤을 때 GDP가 떨어졌던 시기는 모두 보수정권 때였고 진보정권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크게 기억에 남았던 한마디가 현 정권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것은 국민이고 지금의 위기는 국민 수준이 낮아서 라고 말한 것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대선이 치러진 직후엔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국민수준이라니 나는 그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기분이 나빴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내가 그 51퍼센트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나는 바른 결정을 했는데 억울하다 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왕인 시대에 똑똑하고 정의로운 왕이 될 수 있게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가 발전하고 그 발전이 주변까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님은 이 책이 20대와 50대에게 많이 읽히기를 바라셨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는 않다고 하셨다. 20대가 이 책을 읽고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길 바랐고 그 이해가 곧 50대들에게 전해지길 바랐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을 읽는 50대는 자신이 겪었던 그 50년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길 바랐다고 한다. 이 바람이 잘 이루어졌는지 아닌지는 책이 나온 지 한 달반밖에 되지 않은 지금 평가할 문제는 아니지만 작가님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도로 책을 읽고 전달한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작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역사를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역사서는 원래 사실에 입각하여 저자의 견해를 배제한 채 써져야 한다고 하지만, 이 책은 저자의 삶의 흐름에 따라 쓰인 만큼 개인이 바라본 역사적 사건이 어떠한 지 개인적인 견해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그냥 역사적 사실 만 공부할 때와는 또 다른 인간적 이해가 가능할 수 있었다. 한 사건에 대한 역사적 견해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저자의 견해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한 논거를 제시하면서 일련의 사건들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큰 사건의 줄기대로 바라보면서 관망하는 것도 역사를 공부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어느 정도 역사의 흐름을 공부한 뒤라면 이 책을 읽고 역사적 사건들 사이에 있는 인간적인 평가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 사건을 한 줄로 명확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 사건에 개입되어 있는 많은 인물들 때문이고, 그러한 인물들을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도 인간을 한 가지 색깔로만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가 계속되는 대립을 하는 것도 말하자면 어떤 정의를 내릴 때 서로 의견을 합치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라서 나쁘고, 보수라서 나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진보의 이런 점은 잘못되었고 이런 점은 잘했다 또는 보수의 어떤 점은 너무 하지만 어떤 점은 잘했다 하듯이 올바른 평가를 내리는 것, 잘한 부분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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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일상 2014. 3. 4. 00:13

발톱 끝에서부터 밀려올라오는 한숨이 몸 밖으로 나온다. 온 몸이 꺾여서 털썩 주저앉을 것만 같다. 한숨과 함께 빠져나온 기운이 공기 속으로 퍼져서 멀리멀리 간다.

쓰고 싶은 글은 요즘 관심 있는 세계사나 역사에 대해서였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다 흩트려놓을 만큼 답답하고 화가 나는 현실이 그런 글을 쓰지 못하게 한다. 차별을 받아도 이젠 별로 서러움도 느끼지 않고 그냥 욕한바가지 시원하게 하고나면 속이 풀리곤 했는데 점점 너무 심해진다 싶다. 화도 나고 의문도 들고 끝에는 걱정이 될 만큼 지금의 상태는 이상하다. 사람이 생각을 하고 사고를 하는데 저럴 수가 있나 싶다. 이유도 궁금하고 머릿속 상태도 궁금하다. 예전엔 이해는 못해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젠 싫다. 다 싫다. 여기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 한다. 사람을 피하기 위해 나의 미래까지 제한적으로 바꿔야하다니 끔찍한 현실이다. 애정을 바란 적도 없는데 애정을 가장한 비정상적인 간섭을 받는다. 그것이 애정이 아님을 아무 것도 아님을 알기에 더 소름이 돋는다. 그렇다고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은 사랑인가 하면 그것도 확신할 순 없다. 저런 종류의 사람도 있겠지 라고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어렵다. 자신에게 오는 피해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수하고서라도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그렇게 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나는 충돌을 할 수도, 인내를 할 수도 없다. 충돌을 하기엔 솔직히 겁이 난다는 점이 가장 크고, 또한 대화 같은 것이 통하지 않는 종류라는 점이 그렇다. 인내를 하기에는 나는 스스로의 화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너무 감정적이고 다혈질적인 미숙한 사람이라서 그럴 수가 없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사람이 너무 밉다. 그 사람의 비정상적이고 뒤틀린 생각, 개념들로 왜 상처받고 피해 받아야 하는 지 정말 모르겠다. 실수라던가 잘못이라던가 하는 것이면 바로잡고 고칠 수 있겠지 하지만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수용, 아니 들어내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천적인 결함과 후천적 환경요인이 뒤섞여 만들어진 비도덕적인 인간상은 개선의 희망을 가지기엔 너무 어려운 존재가 아닐까.

덧붙여 가장 무서운 사람이 자신이 습득한 지식(물론 겉으로 습득한,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만 하는 지식)을 사람들에게 들이대면서 평가하고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의 한심함은 물론 그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점에도 있겠지만 지식의 정도와 앎의 폭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구별해내려는 무식함에 있다. 예술과 문화와 철학 같은 것이 뭐가 중요할까 물론 그런 것들을 알아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눈으로 읽고 보되 그걸로 끝나서 자신의 지적 허영심만 채우려고 든다면 그 행위들은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다.

나도 물론 완벽하고 인격적으로 고고한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 되진 않으려고 다짐하고 노력한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욱하더라도 그 순간을 반성하고 뉘우쳐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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